사나이 가는길



사나이 가는 길앞에 웃음만이 있을 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 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랴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아
내 다시 돌아갈 때 열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 보리라.

날씨가 궂어 마음이 스산할 때 그는 가끔 이 노래를 불렀다.
추석이나 설 명절날처럼 자신을 돌이켜보는 마음이 될 때 그는 곧잘 창가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른다기 보다는 낮게 중얼거리는 투였다.
더구나 철창에 이마를 붙이고 바깥에다 대고 불렀다.
그래서 그 노래의 곡조와 가사는 좀채로 알 수 없었다.
노래의 가사를 알고 나서 나는 그가 이 노래를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나이 가는 길앞에 웃음만이 있을 쏘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 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랴’
그가 고향을 떠날 때의 비장함이다.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안고 떠나 온 정든 고향아’
모진 서울살이에서 상처받고 좌절했을 때의 고향생각이다.
‘내 다시 돌아갈 때 ’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돈벌어서 어머니 찾아 가겠다는 것이 그의 최후의 소망이다.
‘열 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 보리라’
그가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다. 그러나 이 최고의 소망은 아무래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데에 그의 질긴 슬픔이 있었다.
어느해 설날 그는 제법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고향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열 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리며 돌아가지는 못하였다.
밤중에 마치“도둑처럼”몰래 마을에 숨어들어 부엌에다 돈을 두고 도망치듯 달아났었다. 고향집 뒷산 언덕에서 어둠속에 묻혀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가슴아파했었다. 화사한 봄날 고향사람들의 마중을 받으며 꽃잎을 날리며 돌아오는 환향을 그리워했었다. 마을사람들은 그가 절도 전과자인 줄을 다 알고 있었다. 만원짜리 지폐를 뿌리며 돌아 간들, 10만원짜리 수표를 뿌리며 돌아 간들 그것이 꽃잎이 되지는 못하리라는 좌절감에 그는 절망했었다.
비오는 날 창가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절망이었다.
그의 노래를 듣는 나도 마음 아팠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가 꽃잎을 뿌리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은 없을까?
망가진 심신과 빈 손뿐인 그가, 더구나 절도전과를 문신처럼 이마에 자자하고 있는 그가, 어떻게 하면 꽃잎을 뿌리며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참으로 가망없는 일이었다. 절망이었다. 이것은 그의 절망일 뿐만아니라 상처받고 억눌린 숱한 사람들의 절망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세월이 온다면 그의 절망도 씻은 듯이 사라지리라고 생각되었다.

“참 그 때는 없이 사는 사람 사람도 아니었지”
“참 그 때는 대학 못나왔다고 사람도 아니었지”
“참 그 때는 그렌저타며 잘난 척 했었지”
“참 그 때는 벼슬이나 한듯 잘 난 척들 했었지”

이러한 이야기로 오늘을 돌이켜 보는 그런 세월,
그런 세상이 된다면 아마 가난과 천대로 얼룩진 땟국 말끔히 씻고
그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이뿐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는 고향역에 내려
열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뿌리며 환향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만원짜리 지폐 한장 뿌리지 않더라도
다만 정직한 노동에 굵어진 손마디 흔드는 것만으로서도
꽃잎을 날릴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비단 그 한 사람 뿐만아니라 천대받고 상처받은 이 시대의 모든 민중들이 꽃잎을 뿌리며 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