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염간(念間) 점묘(點描)

1977년10월26일 대전에서

19일(수)
수요일마다 네 사람은 성경 연구 집회에 가고 방에는 저와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남게 됩니다. 교도소 내에 가장 많은 책이라면 아마 기독교 성경일 것입니다.

20일(목)
운동 시간에는 세탁 공장과 영선 공장이 매일이다 싶은 미원(味元)내기 권구(拳球 :야구 흉내의 찜뽕) 시합을 벌이는데, 저는 오늘도 심판이었읍니다. 심판은 특히 한쪽이 기울 때 공정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21(금)
오늘은 제 3주 금요일, 우리 방의 두 사람이 무기수 생일연에 다녀왔읍니다. 한 사람은 30년 만에 고모를 만났읍니다. 20일에 부치신 아버님의 송금 받았습니다.

22(토)
2공장(나전 공장)에 출장(?), 글씨를 몇 자 써주었읍니다. 공장 출장은 미니 여행, 그 곳에는 공장수(工場囚)들의 인심 후한 글씨 칭찬이 저를 삥 두릅니다.

23(일)
장끼전, 섬동지전(蟾同知傳)을 읽었읍니다. 풍자는 그 자체로 이미 고도의 예술적 형상화라 하겠읍니다. 풍자와 골계(滑稽)뒤에 숨은 조상들의 비판 정신이 서슬 푸릅니다.

24(월)
잠시 창가에 서성이며 눈을 쉬다가, 우연히 거미란 놈이 몸피가 배나 되는 벌레를 산 채로 동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였읍니다. 우리방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상당수의 벌레 친구들이 있읍니다.

25(화)
아침 나절 한 벼루 가득 먹(墨)을 갈았더니 묵향(墨香)이 공방(空房)에 충만합니다. 오랜만에 대자(大字)를 써 보았읍니다.

호계삼소 석과불식
虎계三笑碩果不食

변형(變形, deformation)은 능소(能小)한 숙련과 능대(能大)한 용단이 적절히 배합될 때 뛰어나오는가 봅니다.

26일(수)
오늘 어버님의 하서(20일자) 받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