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와 그림과 인간

1976년7월5일 대전에서

비가 내려 며칠째 시원하게 지내고 있읍니다.
유월 중에는 여러 번 접견이 있어서 소식을 잘 듣고 있읍니다. 아버님께서 보내 주신 화선지와 편지 받았읍니다.
저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서, 붓을 잡는 자세를 성실히 함으로써 먼저 뜻과 품성을 닦는, 오히려‘먼 길’을 걸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뜻과 품성이 비로소 훌륭한 글씨와 그림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믿고 있읍니다. 인도(人道)는 예도(藝道)의 장업(長葉)을 뻗는 심근(深根)인 것을, 예도는 인도의 대하(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 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금년도 벌써 반 넘어 7월입니다.
이 각박한 토양에도 잡초들은 여기저기, 심지어 벽돌담 꼭대기에도 그 질긴 생명의 뿌리를 박아놓고 있읍니다. 역시 여름인 줄을 알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