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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신영복 펴낸이：한철희 펴낸곳：돌베개 표지디자인：주명덕 사 진：이승혁 값 5,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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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언덕에서 멀리 돌팔매를 하면 돌멩이는 둥글게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집니다. 공중에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면서 그것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달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도 그것이 공기의 무게 때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만 지금도 생각을 그르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르치는 까닭이 지금은 단지 쉽고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이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을 덮어둔 채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기란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1995년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이유가 없지않다고 하더라도 이미 발표된 글을 또 책으로 내놓기가 송구스럽습니다. 발표된 글을 다시 내놓을 때는 고쳐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구(字句)를 바로 잡는데 그쳤습니다. 책으로 만들어 내놓는 이유가 더욱 구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필자 역시 멎어 있는 차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난 여행은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담없이 다시 떠나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글이 안되는 곳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접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보고는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머리보다는 발이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이번 글은 주제를 먼저 정한 다음 그러한 주제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찾아가는 순서였습니다. 그러나 직접 가 보고 나서야 대상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미리 만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짧은 글이라 어차피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없고 담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화두(話頭)를 던지듯 쓰고자 하였습니다. 그랬는데도 군데군데 소용도 없는 욕심을 부린 곳이 눈에 띄어 민망스럽습니다.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릴 것을 그랬습니다. 그림도 글 쓰는 사람이 그린다면 글에 못다 담은 것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어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직접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오히려 글을 더 어렵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데려가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의 경우도 비슷한 이유로 이승혁씨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감각도 동떨어진 필자를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견뎌주신 「중앙일보」기획·편집진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현지에서 안내하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직접·간접으로 성원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쓰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쓰고 싶지 않은 말을 쓰지는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옥중에서 검열을 염두에 두고 엽서를 적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문현독(愚文賢讀)을 바랍니다. 1996년 여름 볕내남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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