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새의 꾸짖음

1987년 7월 6일 전주에서

새장 속에 거울을 넣어 주면 새가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한 번도 옥담 안으로 날아든 적 없어 다만 그 지저귐만으로 친한 사이지만 여름 나무의 무성한 새소리는 큼직한 옥중 거울입니다. 그러나 뭇새 소리 가운데 유독 머슴새 소리는 거울의 환영(幻影)이 아닌 회초리 같은 통렬함을 안겨 주는 듯합니다.
꾀꼬리 소리는 너무 고와서 귀 간지럽고, 뻐꾸기 소리는 구성져 산을 깊게 만들지만 한물 간 푸념인데 오직 머슴새 소리만은 다른 새소리 듣듯 한가롭게 앉아 맞을 수 없게 합니다.
단숨에 3,40번, 그리고 숨돌릴 새도 없이 또 그렇게 우짖기를 거듭하여 5분, 길게는 무려 7,8분 동안 줄기차게 소리칩니다. 늦저녁과 신새벽을 골라 언제나 어둠 속에서만 우짖는 머슴새 소리는 흡사 창문을 깨뜨릴 듯, 우리들의 잠을 두들겨 깨우듯 당당하고 거침이 없읍니다.
혹은 머슴이 들판에서 소 꾸짖는 소리라고도 하고, 혹은 주인한테 맞아죽은 머슴 혼백이 주인 꾸짖는 소리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머슴새는 분명 누구를 당당하게 꾸짖고 있음에 틀림없읍니다. 후닥닥 무릎 고쳐 앉게 하는 꾸중이고 채찍임에 틀림없읍니다.
물을 거울로 사용하던 옛날부터의 이야기입니다만 무감어수(無鑑於水)라 하여 물에다 얼굴을 비춰보지 말라는 금언이 있읍니다. 이는 외모나 말이나 현재를 보지 말고, 외모 속의 실체와 말 이후의 실천과 현재가 잉태하고 있는 미래를 직시하라는 뜻이며, 그도 그 시대의 역사적 당위(當爲)에 준거하여 비춰봐야 한다는 뜻이라 믿습니다. 꾀꼬리, 뻐꾸기가 전자의 정한(靜閑)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머슴새는 후자의 그 변혁의 실상을 깨우쳐 주는 겨울이라 생각됩니다.
6,7월 뜨거운 열기와 수많은 동료들의 참담한 고뇌를 제껴 두고 한가로이 새소리나 적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머슴새의 꾸짖음 소리가 들려올 듯합니다. 갑오(甲午) 녹두새의 채찍 같은 꾸짖음 소리 날아올 듯합니다.
아버님·어머님을 비롯해서 형님·형수님, 우용이·주용이 모두 평안하리라 믿습니다. 더위와 비를 함께 앞두고 있는 7,8월, 성장(盛長)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