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머금은 수목처럼

1986년 7월18일 전주에서

장마 걷히고 나니 어느새 여름도 한여름입니다. 더운 여름철에 어머님의 자리 보전(保全)이 더욱 어려우시리라 걱정됩니다.
이곳의 저희들은 별고없이 지내고 있읍니다. 교도소의 더위는 한방에 수용된 인원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이곳은 내전에 비하여 거실의 창문이 크고 낮아서 더위가 한결 덜 할 것 같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산에는 그동안 흠씬 물 머금은 수목들이 무섭게 성장할 태세로 여름볕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여름을 다만 더위로서만 받아들이기 쉬운 저희들은 먼저 저 수목들의 청청한 태세를 배워야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기체후 만강하시길 빌며 이만 각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