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에 대하여

1983년7월29일 대전에서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읍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善)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不善)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주자(侏子)의 주석(註釋)에는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필시 구합(苟合)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마을의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실(實)이 없다 하였읍니다.
구합은 정견(定見)없이 남을 추수(追隨)함이며, 무실(無實)은 선자(善者)의 편이든 불선자(不善者)의 편이든 자기의 입장을 갖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읍니다. 정견이 없는 입장이 있을 수 없고 그 역(逆)도 또한 참이고 보면 논어의 이 문답(dialogue)이 우리에게 유별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타협과 기회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당파성(黨派性, Parteilichkeit)에 대한 조명과 지지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 부당(不扁不黨)이나 중립을 흔히 높은 덕목으로 치기도 하지만, 바깥 사회와 같은 복잡한 정치적 장치 속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화된 징역 모델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싸울 때의 '중립'이란 실은 중립이 아니라 기회주의 보다 더욱 교묘한 편당(扁黨)임을 쉽게 일 수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기'가 아니면, 소년들이나 같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感傷的理想主義)'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입장과 정견이 분명한 실(實)한 사랑의 교감(交感)이 없읍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읍니다.
징역을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의 경우가 아마 가장 철저하리라고 생각되는데 '마을의 모든 사람'에 대한 허망한 사랑을 가지고 있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이것은 '증오에 대하여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증오는 그것이 증오를 하는 경우든 증오를 받는 경우든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宥和)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깨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장마 사이사이 불볕입니다.
하도 장성(夏道長成), 여름의 도(道)가 장(長)과 성(成)에 있다니, 물과 불이 번갈아 기승을 안부릴 수도 없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