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裸木) 건너편에는

1981년 11월 9일 대전에서

공장과 사동(舍棟)에 부착할‘동상 예방 주의 사항’을 채 다쓰기도 전에 추위가 찾아왔읍니다.
가을 초입부터 겨울을 느끼며 사는 저희들에게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못됩니다. 조금은 귀찮은 일이긴 합니다.
갑년(甲年)이 지난 낡은 담벽 밖으로 여름내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던 가로수들은 발 밑에 낙엽을 떨구어 거름으로 챙기며(落葉而糞本), 내년의 성장을 약속하고 있읍니다.
이 나목(裸木)들의 건너편에는 어름 보리누름에, 가뭄과 혹서로 그토록 시달리던 언덕에 지금은 반달연, 가오리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쥐불을 놓아 까맣게 언덕을 그을려 먹는 꼬마들이 제 철을 만난 듯 뛰놀고 있읍니다.
낡은 담, 조락(凋落)한 나무들 뒤편에 이처럼 발랄한 어린이들의 약동이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 하나의 놀라운 교훈입니다.
우용이·주용이도 그림 속의 어린이처럼 겨울에 더욱 강한 어린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