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

1980년8월27일 대전에서

15척 옥담으로 둘린 교도소의 땅은 흔히들 좌절과 고뇌로 얼룩져서 화분에 담긴 흙처럼 흙내가 없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 패연(沛然)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창문 가득히 물씬 풍기는 흙내에 깜짝 놀랐읍니다. 이층에서 보는 빗줄기는 더욱 세차고 길어서 장대같이 땅에 박혀 있었고, 창문 가득한 흙내는 그 장대 빗줄기 타고 오르는―맑은 날 뭉게구름 되려고 솟아오른 흙내였읍니다.
지심(地心)의 깊음에 비하면 얼룩진 땅 한 켜야 종이 한 장 두께도 못되는 것이엇읍니다. 아이들은 뱀을 죽이면 반드시 나무에 걸어 두었읍니다. 흙내를 맡으면 다시 살아나서 밤중에 이불 속으로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읍니다.
흙내는 그런 것이었읍니다.
서울의 흙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읍니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밑에서도 서울의 흙은 필시 차가운 지하수를 가슴에 안고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음에 틀림없읍니다.

귀뚜라미가 방에 들어왔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