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편지

1979년 2월25일 대전에서

그간 어머님을 비롯하여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금년은 매우 따뜻한 겨울이었읍니다. 연일 봄비가 내려 주위가 축축합니다만, 춘도생 만물영(春道生萬物榮), 이 축축함이 곧 꽃이 되고 잎이 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며칠 전에는 1885년에 아메리카의 한 인디언이 미국 정부에 보낸 편지를 읽었읍니다. 그 속에는 이런 귀절들이 있읍니다.
“당신(백인)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매매할 수 있읍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기실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의 고동 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팔 수 없다고 하는 이 인디언의 생각을, 사유(私有)와 매매(賣買)와 소비의 대상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는 백인들의 사고 방식과 나란히 놓을 때 거기‘문명’의 치부가 선연히 드러납니다.
또 다음과 같은 귀절도 있읍니다.
“땅으로부터 자기들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나 가져가버리는 백인들은(땅에 대한) 이방인입니다.”
“당신네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인디언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자연을 적대적인 것으로, 또는 불편한 것, 미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인간 생활로부터 자연을 차단해 온 성과가 문명의 내용이고, 차단된 자연으로부터의 거리가 문명의 척도가 되는‘도시의 물리(物理)’,‘철근 콘크리트의 벽과 벽 사이에서 없어도 되는 물건을 생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욕망과 갈증의 생산에 여념이 없는, 생산할수록 더욱 궁핍을 느끼게 하는‘문명의 역리(逆理)’에 대하여, 야만과 미개의 대명사처럼 되어온 한 인디언의 편지가 이처럼 통렬한 문명 비판이 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문명과 야만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옳다고 생각됩니다.
편지의 후예들은 지금쯤 그들의 흙내와 바람마저 잃고 도시의 어느 외곽에서 오염된 햇볕 한 조각 입지 못한 채 백인들이 만들어낸 문명(?)의 어떤 것을 분배받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이 짤막한 편지를 읽으며 저의 세계관 속에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적 잔재가 부끄러웠읍니다. 서구적인 것을 보편적인 원리로 수긍하고 우리의 것은 항상 특수한 것, 우연적인 것으로 규정하는‘사고(思考)의 식민성(植民性)’은 우리들의 가슴에 아직도 자국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읍니다.
저는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려고 하였던 세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것을 잃고, 버리고, 외면해 왔읍니다. 지금은‘노인’마저 급속히 없어져가고 있는 풍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우리의 생활 속에는 아직도 조상의 수택(水澤)이 상신(尙新)한 귀중한 정신이 새로운 조명(照明)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은 귀절로 끝맺고 있읍니다.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정성을 기울여,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해 주십시오. 비록 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 될 수는 없읍니다.”